기사 및 칼럼

득표서 이긴 힐러리의 패배…"문제는 선거제도"

[프레시안 뷰] 52.5% 유권자를 배신한 미국 대선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승리했습니다. 11월 9일 밤은 아마도 절반 이상의 미국인들에게는 절망의 밤이었을 것입니다.


도널드 트럼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일일이 열거하지 않더라도 될 것입니다. 그의 대통령 당선은 미국뿐만 아니라 지구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금융시장이 출렁거렸을 정도입니다.

앞으로 4년 동안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그의 입에서 나오는 얘기를 끊임없이 듣게 될 것입니다. 참 피곤한 일입니다. 대한민국 대통령 때문에도 이렇게 고생을 하는데, 다른 나라 대통령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되었으니 말입니다. 

가장 걱정되는 것 중에 하나는 기후 변화 문제입니다. 지난해 12월 전세계 각국이 프랑스 파리에 모여서 합의한 파리 협정이 있습니다. 지구의 기온 상승을 최대한 1.5도에서 막자는 목표에 합의를 했는데, 트럼프는 이 파리협정을 깨거나 재협상하겠다고 공공연하게 말해 왔습니다. 그러니 지구에 사는 시민으로서, 트럼프 당선에 대해 우려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꼭 짚을 것이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는 불과 47.5% 유권자들의 표로 당선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단순 득표 수로 보면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보다 더 많은 표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입니다.  


오늘(11월 10일) 아침 8시까지 집계된 득표수를 보면(CNN 개표방송), 클린턴이 5979만6396표를 얻어 47.7%를 득표하고 있고, 트럼프가 5958만9855표를 얻어 47.5%를 득표하고 있습니다.  


▲ ⓒCNN



미국 대선 역사를 보면, 2000년 대선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앨 고어 후보는 조지 부시 후보보다 득표 수에서는 53만7000표 정도 앞섰습니다. 그러나 각 주별로 얻은 대의원 수가 더 중요한 미국의 선거 제도 때문에 조지 부시가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당시에 조지 부시가 얻었던 득표율은 47.9%였습니다.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선거 제도는 핵심입니다. 그런데 미국의 선거 제도는 여러 비판에도 불구하고 지금껏 '대의원에 의한 간접 선거 - 주별 대의원 승자 독식(일부 예외를 제외하고)'라는 틀을 유지해 왔습니다.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는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고 있는 결선투표제같은 제도도 채택하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득표 수가 적은 후보가 대통령을 차지하는 기묘한 일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파행적인 선거 결과는 미국만이 아니라 전세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습니다.  

화석연료 산업을 철저하게 대변했던 조지 부시로 인해 기후 변화를 막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을 허비했습니다. 전쟁과 테러의 위협은 오히려 증가했습니다. 이제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인해, 더 큰 피해가 지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생명들에게 미칠 것입니다.

그래서 선거 제도가 중요합니다. 잘못된 선거 제도를 인정한 상태에서 민주주의가 잘 되기를 바라는 것은 요행심리에 가까운 것입니다. 선거 제도를 고쳐야 민주주의가 제대로 안착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선거 제도를 개혁하려는 움직임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여론조사에서도, 선거 제도를 고치자는 의견이 높습니다. 2007년 <워싱턴포스트>에서 한 여론 조사 결과를 보면, 민주당 지지자 중 78%, 공화당 지지자 중 60%, 무당파 성향의 유권자 중 73%가 대통령 선거를 직선제 방식으로 바꾸자는데 동의했습니다. 


1969년 미국 하원에서는 대통령을 직접 선출하도록 하는 헌법 개정 안이 338대 70이라는 압도적 차이로 통과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개정 안은 상원에서의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에 의해 좌절되었습니다. 어느 나라든 선거 제도를 개혁하려면, 기득권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는 숙제가 있습니다.  

선거 제도 개혁의 필요성은 대한민국에서도 강합니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제를 택하고 있으면서 결선투표제를 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절반에 못 미치는 지지로도 당선되어 100%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구조입니다.  


또한 '지역구 1위 대표제' 중심의 국회의원 선거제도 때문에 정당이 얻은 득표율과 의석 간에 불비례성이 심합니다. 역대 총선을 보면, 40% 남짓한 득표율로도 특정 정당이 국회 과반 의석을 차지해서, 전횡을 저지른 사례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한민국도 선거 제도를 대폭 뜯어고쳐야 하는 국가입니다.  

어쨌든 도널드 트럼프를 택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치하에서 4년간 살아야 하는 52.5%의 미국 유권자들에게 진심으로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민주주의를 위해, 우리 삶을 위해, 잘못된 정치 시스템을 함께 뜯어고칠 것을 제안하고 싶습니다.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날짜 조회 수
750 흙수저당·위안부인권당…(한겨레, 2016.02.03) file 2016.02.17 1190
749 획정위 손대려는 與, 속내는…'비례대표제 논의는 안돼'(the300, 2016.01.13) file 2016.01.13 741
748 황종섭, "선거제도 개혁 논의 중단, 포기하긴 아직 이르다" (미디어스 2015.9.13) file 2015.09.13 742
747 황종섭, "물거품 위기 처한 선거제도 개편, 무력화된 정개특위" (미디어스 2015.8.13) file 2015.08.13 709
746 황종섭, "기울어진 운동장… 결국, 선거제도의 문제다" (미디어스 2015.7.16) file 2015.07.20 787
745 헬조선의 청년들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 (한겨레, 2016.03.21) file 2016.03.23 767
744 헬조선 치유법은 비례대표제+복지(허핑턴포스트, 2016.02.15) file 2016.02.17 586
743 헌재 "4·13 총선 선거구 미획정, 위헌은 아니다" (연합뉴스, 2016.04.28) file 2016.04.29 419
742 한정석, "선거제도 혁명으로 정치 선진화를!" (미래한국 2015.9.5) file 2015.09.07 1078
741 한귀영, "진보정치의 열린 틈새" (한겨레 2015.7.20) 2015.07.20 945
740 한국사회 변화의 열쇠 ‘영포티(Young Forty)’ (한국일보, 2016.01.11) file 2016.01.11 1435
739 한국 청년도 ‘삼촌’ 정치인 갖게 될까 (중앙일보, 2016.02.19) 2016.02.19 726
738 하승수, "안철수는 ‘전면 비례 대표제’를 제안하라" (한겨레21 제1007호) file 2014.06.13 1289
737 필리버스터란? 다수당 독주 막는 무제한 토론…최장기록 ‘10시간15분’ (한겨레, 2016.02.23) file 2016.02.24 856
736 파행으로 얼룩…'풀뿌리 민주주의'가 말라간다 2016.07.13 989
735 투표율까지 '부익부 빈익빈' (경향신문, 2016.03.28) file 2016.03.29 833
734 통합진보당 소속 지방의회 비례의원, 복권 논의 시작될 듯 (민중의소리 2015.10.08) file 2015.10.08 892
733 텃밭도 "지역보다 인물"… 더이상 '묻지마 지지'는 없다 (세계일보, 2016.04.20) file 2016.04.21 802
732 추석에도 '선거구획정'… 설에도 '선거구획정' (아시아경제, 2016.02.05) file 2016.02.05 800
731 최태욱·남재희(대담), "야당, 무엇을 할 것인가?" (프레시안 2014.12.22) file 2014.12.22 951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5 6 7 8 9 10 ... 38 Next
/ 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