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선거제도 제대로 이해하기

나쁜 선거제도하에서는 좋은 정치가 나올 수 없다



나쁜 선거제도 하에서 좋은 정치는 없다

최근 개헌 논의와 더불어서 선거제도 개편 논의가 일어나고 있다. 그 동안 우리 정치는 승자독식의 정치, 대화가 아닌 대결의 정치, 기울어진 운동장 정치,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정치, 계파 정치 등등의 비판을 받아 왔다. 우리 정치의 이러한 특징들은 우리의 선거제도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 나쁜 선거제도 하에서 좋은 정치를 기대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좋은 헌법과 더불어서 좋은 선거제도를 만들자는 뜻에서 독일 연방의회(하원) 선거제도를 소개하는 것부터 시작하여 몇 차례에 걸쳐서 글을 연재하려고 한다.   


36_55_2843.jpg


최근 유력한 정치인들이 독일식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든지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하면서, 독일 선거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상태이다. 바람직한 일이다. 그러나 정작 독일의 선거제도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드물다. 특히 2013년 독일 선거법이 개정되었기 때문에 더욱 그런 것 같다. 우리나라에 독일식 선거제도를 도입하기를 원한다면, 우선 독일의 제도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아야 할 것이다. 다소 복잡하지만, 좋은 선거 제도를 만들자는 사명감을 가지고 끝까지 읽어 주시기 바란다.  



독일 선거제도의 특징

 

독일 선거제도는 지역구별로 1명을 뽑는 소선거구제와 비례대표제가 혼합된 제도이다. 비례대표 후보들의 명부는 권역별(주명부, Landeslisten)로 작성된다. 유권자는 지역구 후보에 대한 제1투표(개인투표)와 정당에 대한 제2투표(정당투표)를 행사한다. 제1투표에 의해서 지역구 의원이 선발되고, 제2투표에 의해서 비례대표가 선발된다. 제1투표는 의석 배정에서 우선권을 가지지만, 최종적인 정당별 의석수는 각 정당이 전국 단위에서 얻은 제2투표에 의해서 결정된다. 이와 같이 지역구 선거와 비례대표 선거, 인물 선거와 정당명부 선거, 권역별 선거와 전국 선거가 혼합되어 있으면서, 전국 단위에서의 정당득표율이 최종적인 결정을 하는 독특한 선거 제도이다. 2013년의 선거결과를 예로 들어가면서 차근차근 설명해 보자.



독일 선거 의석 배정 절차


1) 제1단계: 인구에 비례해서 주별로 의석을 배정한다.

 독일 하원 의석수는 일단 598석에서 시작한다.(최종적인 의석수는 이것보다 커질 수 있으므로 이것을 기준의석이라고 불러보자). 지역구 후보는 그 절반인 299명이다. 지역구 후보들은 선거구에서 1명씩 단순다수제(최다 득표자를 당선시킴)로 선발된다. 비례대표를 배정하는 과정은 전체 의석수 598석을 주별로 배정하는 절차에서 시작된다. 왜 비례대표 299석이 아니라 전체 의석수 598석을 배정할까? 그것은 전국 단위에서 비례를 맞추기 위해서이다. 끝까지 읽어보면 알 수 있다.


 598석을 인구에 비례해서 주별로 배정하는 과정은 다음의 표 1에 나와 있다. 핵심적인 절차는 적절한 제수(除數, divisor)를 찾는 것이다. 주별 인구수를 어떤 제수로 나누면 몫이 나온다. 이 몫에는 소수점 이하 자리가 포함되어 있는 것이 보통이다. 몫을 반올림한 것이 주별 의석수이다. 소숫점 이하가 0.5 미만이면 내림을 하고, 0.5를 초과하면 올림을 하고, 정확하게 0.5인 경우에는 598석을 맞추기 위하여 올림을 할 수도 있고 내림을 할 수도 있다.


두 가지 이상의 방법이 가능하면 선관위에서 제비를 뽑아서 결정한다. 주별 의석수의 합계가 598석이 되는 제수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의 표에서 제수는 124,050으로 나와 있다. 반올림한 의석수를 다 합치면 정확하게 598석이 된다.



36_73_5450.jpg



제수 124,050은 어떻게 찾았을까? 주먹구구식으로 찾아도 된다. 일단 그럴듯한 숫자 하나를 집어넣어서, 몫을 구하고, 반올림해서 의석수를 배정하고, 의석수를 합쳐서 598이 되나 본다. 만약 합이 598보다 크면 제수를 조금 늘리고, 598보다 작으면 제수를 조금 줄인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하면 의석수의 합을 598로 만드는 제수를 찾을 수 있다. 너무 주먹구구식이라고 생각되는가? 다음 글에서 소개하겠지만, 체계적인 방법도 있다. 독일 사람들은 이 방법을 생-라게 / 쉐퍼스(Sainte-Laguë / Schepers) 방법이라고 부른다. 미국 사람들은 이 방법을 웹스터(Webster) 방법이라고 부른다.



2) 제2단계: 정당별 최소보장의석을 정한다.  


 제2단계에서는 일단 주 내에서 정당별 제2투표에 비례해서 의석을 배정한다. 앞의 표1에서 튀링겐 주에는 17석의 의석이 배정되었다. 비례대표 배정에 참여할 수 있는 정당은 전국에서 제2투표로 5% 이상을 득표하거나 지역구에서 3석 이상을 얻어야 한다. 튀링겐 주에는 이런 정당이 4개가 있었다. 표 2의 첫 번째 열에서 네 번째 열까지에 4개의 정당에게 17석이 배정되는 과정이 나와 있다.



36_74_5451.jpg



앞에서와 동일하게 생-라게 / 쉐퍼스 방법에 따라 의석수의 합이 17이 되도록 만드는 적절한 제수를 찾는다. 이 경우에는 제수가 60,000이었다. 제수로 나누고 몫을 반올림해서 의석을 배정하면 17석이 정당별로 배정된다.


다음으로 최소보장의석을 결정한다. 최소보장의석수(Mindestsitzzahl)란 위의 과정을 통하여 정당별로 배정된 의석수와 지역구 당선자수 중에서 더 큰 값(최대값)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표 3에서 CDU는 배정된 의석은 8석인데 지역구 당선자는 9석이었으므로, 최소보장의석은 9석이 된다. 최소보장의석은 배정된 의석과 1석의 차이가 나는데, 이것을 초과의석(Überhangmandate)이라고 부른다. 튀링겐 주에서 나머지 정당들은 배정된 의석이 그대로 최소보장의석이 되고, 초과의석은 없다.


주 내에서 배정된 정당별 최소보장의석을 전국에 걸쳐서 합치면 전국 정당별 최소보장의석을 구할 수 있다. 전국 정당별 최소보장의석은 표 3에 나와있다. 최소보장의석은 602석으로 기준의석 598석을 초과한다.


36_75_5451.jpg



3) 제3단계: 연방의회 의석수를 조정해서 최종의석을 정한다.


 처음에 기준의석은 598석이었다. 그러나 표 3에서 최소보장의석은 602석이다. 따라서 의석을 늘려야 한다. 이 때 정당별로 전국적으로 얻은 제2투표에 비례하면서도 최소보장의석을 보장하도록 의석수를 늘린다. 이렇게 해서 최종적으로 조정된 의석을 최종의석이라고 부르자.


최종의석을 구하는 과정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 과정에서 제수를 더듬어서 찾아가는 과정도 나타내 보이자.



36_76_5451.jpg



정당별로 제2투표수를 적당한 제수로 나눈다. 표 4에서 제수를 61,700으로 짐작해서 배정을 해 보면 세 개의 정당에 대해서 최소보장의석을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의석수를 늘려야 한다. 즉 제수를 줄여야 한다. 제수를 58,450으로 줄여보자. 그러면 CSU 한 당에 대해서 최소보장의석을 보장하지 못하게 된다. 따라서 제수를 조금 더 줄여야 한다. 마지막으로 제수를 58,420으로 줄이니까 모든 정당에 대하여 최소보장의석을 보장하게 되었다. 이 때 최종의석은 631석이 된다. 이와 같이 모든 정당에 대하여 최소보장의석을 보장하도록 제수를 줄여가면서 의석을 늘려서 최종의석을 구한다.



4) 제4단계: 최종의석을 정당들에게 배정한다.(상위배정)



이제 최종의석이 631석으로 확정되었으므로, 이것을 정당별로 배정해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은 제3단계에서 최종의석을 정할 때 동시에 이루어졌다. 표 4의 마지막 부분이 그것이다. 굳이 제3단계와 제4단계를 구분할 필요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최종의석을 정할 때 현행법과 다른 방법을 쓰게 되면, 제3단계와 제4단계가 구분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권역별 비례대표제를 도입한다고 할 때, 독일과 똑같은 방법으로 최종의석을 정하게 될 수도 있고 다른 방법으로 최종의석을 정할 수도 있다. 이런 이유에서 제3단계와 제4단계를 구분해서 서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설명의 편의상 표4의 마지막 부분을 다시 한 번 표 5에 표시하자.



36_77_5451.jpg


최종의석 631석을 정당별로 배정한다. 이 때 제수는 58,420이다. 예를 들어, CSU의 경우, 제2투표수 3,243,569을 제수 58,420으로 나누면 몫이 55.52가 되고, 반올림하면 56이 된다. CSU의 최소의석이 56석이므로 정확하게 그만큼을 보장할 수 있게 된다. 이렇게 해서 배정된 의석이 정당별 최종의석이 된다. 당연하지만, 정당별 최종의석을 모두 합하면 631석이 되어야 한다. 최종의석과 최소보장의석과의 차이를 균형의석(Ausgleichsmandate)이라고 부른다.


적어도 하나의 정당(CSU)에 대해서는 균형의석이 0이다. 이렇게 최종의석을 정당별로 배정하는 과정을 상위배정(super-apportionment)이라고 부른다.(Friedrich Pukelsheim, 아래 참고문헌) 상위배정은 정당이 전국적으로 얻은 제2투표에 정확하게 비례해서 이루어진다.(물론 반올림하는 만큼의 차이는 존재한다.)



5) 제5단계: 정당 내에서 최종의석을 주별로 배정한다.(하위배정)


하위배정(sub-apportionment)이란 상위배정 과정에서 배정된 정당별 최종의석을 정당 내에서 주별로 배정하는 과정을 의미한다. 앞의 표 5에서 CDU는 상위배정 과정을 통하여 255석의 최종의석을 배정받았다. 이 최종의석을 주별로 배정하는 과정은 표 6과 같다.



36_78_5451.jpg



표6에서 CDU의 주별 제2투표를 적당한 제수로 나눈다. 제수로 나눈 몫을 반올림한 값과 지역구 당선자수 중에서 더 큰 값(최대값)이 CDU의 주별 최종의석이 된다. 최종의석의 합이 CDU가 상위배정에서 배정받은 최종의석 255석이 되도록 제수를 조정하여야 한다. 최종의석수에서 지역구 당선자수를 뺀 값이 비례대표수(명부 당선자수)가 된다. 이러한 하위배정은 정당이 지역에서 얻은 제2투표수와 거의 비례하게 되지만, 완전히 비례하게 되지는 않는다. 위의 표에서 CDU의 경우, 3석이 비례를 초과하는 의석수이다.



종합


독일 선거제도에서 정당별 최종의석은 각 정당이 전국적으로 얻은 제2투표에 정확하게 비례하게 된다.(상위 배정) 그러나 정당 내에서 주별로 최종의석을 배분할 때에는 제2투표에 거의 비례하지만 정확하게 비례하지는 않는다.(하위 배정) 이와 같이 독일의 선거제도는 지역구에서 얻은 당선자수를 그대로 보장하면서, 전국적으로는 정당별 의석수가 제2투표에 정확하게 비례하게 만들고, 정당 내에서 지역별로 배정할 때에는 제2투표에 거의 비례하도록 만드는 훌륭한 제도이다. 단 하나 흠이 있다면 최종의석수가 선거 때마다 변한다는 것이다. 독일 사람들은 최종의석수가 변하더라도 비례성을 유지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여 이렇게 결정한 것이다.


그런데 지역구 당선자를 보장하고 상위 배정에서 제2투표에 정확하게 비례하도록 하면서도 최종의석수가 (크게) 변하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있다. 하위 배정에서의 비례 정도를 조금 더 희생하면 된다. 이런 방법을 포함해서 독일식 비례대표제를 한국에 도입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에 대해서는 세 번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다음 글에서는


독일의 의석배정 절차에서 제2투표를 적절한 제수로 나누어 반올림하는 방법을 생-라게/ 쉐퍼스 방법이라고 불렀다. 독일 사람들은 왜 이 방법을 쓰기로 하였을까?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미국의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필요하다. 미국에서는 나누는 방법을 둘러싸고 건국 때부터 장장 150년에 걸쳐서 치열한 정치투쟁이 전개되었다. 다음 글에서는 이 역사를 살펴보면서 나누는 방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살펴보기로 한다. 퀴즈: 우리나라는 어떤 방법으로 비례대표를 정당들에게 나누어 주고 있을까?

(이 글에서의 모든 표들은 다음의 두 자료로부터 작성하였다: Der Bundeswahlleiter, “Aktuelle Mitteilung des Bundeswahlleiters vom 09.10.2013”, http://www.bundeswahlleiter.de; Frierich Pukelsheim, Proportional Representation, Springer, 2014).
  


작성자: 강남훈

칼럼 원문 보기: http://www.columning.kr/news/articleView.html?idxno=36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날짜 조회 수
76 언론기획 우리는 아직 평등 선거가 아니다 (칼라밍, 2015.02.09) file 2016.04.22 727
75 언론기획 칼라밍 기획 [평등선거를 향하여] (칼라밍, 2015.10.20) file 2016.03.17 1116
74 언론기획 경향신문 신년기획 [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4) 진보도 보수도 ‘경제’…민주화냐, 성장이냐 ‘해법’ 심판대 (2016.02.03) file 2016.02.04 792
73 언론기획 칼라밍 기획기사 [Agenda2015] 독일식 비례대표제, 최종의석수 안 변하게 만들기 (2015.01.16) file 2016.02.01 961
» 언론기획 칼라밍 기획기사 [Agenda2015] 독일 선거제도 제대로 이해하기 (2015.01.16) file 2016.01.29 971
71 언론기획 경향신문 신년기획 [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3) 시민참여 정치…정치벤처 ‘와글’ 이진순 대표 (2016.01.25) file 2016.01.26 1132
70 언론기획 경향신문 신년기획 [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3) 남부 유럽에 부는 시민참여 정치 (2016.01.25) file 2016.01.26 944
69 언론기획 [한겨레] 제도가 사상이다, 서해성 (2015.12.25) file 2016.01.18 848
68 언론기획 경향신문 신년기획 [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2) 어떻게 극복할 것인가 (2016.01.04) file 2016.01.14 683
67 언론기획 경향신문 신년기획 [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2) 정치혐오를 거부하라 (2016.01.04) file 2016.01.14 738
66 언론기획 경향신문 신년기획 [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1) 배신과 혐오의 정치 (2016.01.03) file 2016.01.14 828
65 언론기획 [프레시안 기획연재 '정치제도, 이렇게 바꾸자'] <2> 황종섭, "득표율은 6.5%, 의석은 99석 차이, 이유는?" (2015.5.14) file 2015.05.14 1197
64 언론기획 [프레시안 기획연재 '정치제도, 이렇게 바꾸자'] <1> 조동진, "국회의원 수 확대, 새누리당은 왜 반대할까?" (2015.5.13) file 2015.05.14 1349
63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⑤ "김용희 중앙선관위 사무총장 '대가 없는 정치자금 없어…기부 대상 풀어주되 투명화해야'" (2015.3.11) file 2015.03.29 1390
62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④-4 "정의·노동당, 지구당 부활 찬성 ‘한목소리’" (2015.3.10) 2015.03.29 1263
61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④-3 "선진국들 ‘지역 분권형’ 지구당 형태 많아" (2015.3.10) 2015.03.29 1126
60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④-2 "'돈 정치 우려' 여야·원내외 공감대" (2015.3.10) 2015.03.29 1198
59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④-1 "정치권 '선거 신뢰 회복 위해 필요'" (2015.3.10) 2015.03.29 1101
58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③-4 "'신인 정치 진입 더 어려워져' 불만 높아" (2015.3.9) 2015.03.29 1029
57 언론기획 [서울신문 기획연재 '선관위 정치개편안 입체분석'] ③-3 "美 참여자 범위 당원·지지자·유권자 제각각" (2015.3.9) 2015.03.29 1136
목록
Board Pagination Prev 1 2 3 4 Next
/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