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하라 그리고 분노하라] (3) 남부 유럽에 부는 시민참여 정치



ㆍ온라인 통해 뭉친 ‘풀뿌리’의 힘…낡은 세상을 바꾸다




‘참여’가 기적을 만든다. ‘시민 정치’는 모든 국가의 과제이자 미래다. 참여가 정치를 바꾸고, 정치가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정치다. 최근 발전하는 온라인을 통한 시민들의 정치 참여는 그 가능성을 여는 기술적 기반이 되고 있다.

정치벤처라는 생소한 간판을 단 ‘와글’은 국내에서 그런 실험을 시도하는 곳이다. 온라인 기반 풀뿌리 시민정치를 연구·지원하고 있다. ‘와글’은 ‘듣도 보도 못한 정치’란 제목으로 최근 ‘정치적 지진’이 일어난 남부 유럽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와글의 사례를 통해 참여가 바꿀 수 있는 정치와 세상의 방향을 살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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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9월8일 시민들이 이탈리아 볼로냐 대광장에 모여 “깨끗한 의회” “부패 척결”을 주장하는 ‘V-day’ 집회를 하고 있다.

V-day는 ‘엿 먹이는 날’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를 줄인 말로, 이날을 계기로 33만6000여명의 시민들이

‘부패 정치인 출마금지 법안제정”에 서명했다. 출처 : 위키미디어



■시민이 만든 정치인, 시민에 복종




“은행가와는 밥을 먹지 않겠습니다.” 지난해 6월4일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첫 여성 시장 아다 콜라우(42)는 취임을 열흘 앞두고 블로그에 자신의 다짐을 글로 올렸다. 그는 “누구와 점심을 먹든 저녁을 먹든 못할 일은 아니지만, 공식적이고 공개될 수 있단 전제하에서만 만나겠다. 비공식적인 식사가 아닌 공식 미팅을 요청해 달라”고 했다. 평소 가깝게 지내던 한 언론인의 “금융회사 중역들과 함께 식사하자”는 제안을 거절한 뒤 그 이유를 설명한 것이다.

스페인 경제중심지 바르셀로나 시장은 왜 금융권 인사들을 만나지 않을까. ‘권력자일수록 사적인 만남을 선호한다’는 것이 콜라우의 설명이다. 그는 ‘감출 것은 전혀 없고 모든 기록은 공유된다’는 원칙을 세웠다. 3주 뒤 콜라우는 “바르셀로나 시장으로서 은행가를 만났다”는 글을 블로그에 올렸다. 시청 집무실에서 한 은행장을 만나 대화한 내용도 상세하게 공개했다. 콜라우는 취임 이후 모든 일정과 면담 내용을 블로그에 공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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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첫 여성시장 콜라우.


콜라우는 취임 후 다른 ‘파격’도 단행한다. 모든 공직자 봉급 상한액을 월 2200유로(약 283만8000원)로 제한하고, 회의비를 따로 책정하지 못하게 했다. 시의원과 고위 공무원의 관용차도 없앴다.

평범한 ‘아줌마’였던 콜라우는 어떻게 시장이 됐고, 정치개혁을 이끌 힘을 갖게 됐을까. 그 배경에는 시민들의 정치 참여가 있다.

콜라우는 2008년 세계금융위기 때 스페인에서 주택대출금을 갚지 못해 집에서 쫓겨난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는 2009년부터 ‘주택담보대출 피해자들을 위한 플랫폼’의 공동창립자이자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시민운동가였던 콜라우는 2011년 5월15일 스페인 ‘15M 운동’을 계기로 정치인으로 변신하게 된다.

스페인 ‘15M 운동’은 인디그나도스 운동이라고도 불리는데 ‘분노한 사람들’이란 뜻이다. ‘15M 운동’은 스페인 군중 약 800만명이 정부의 긴축정책 반대, 실업 해결, 빈부격차 해소, 기성 정당의 정치적 특권 해소 등을 요구하며 광장 등으로 모여든 일이다. 이후 전 세계로 퍼져 뉴욕 점령 시위의 모태가 되기도 했다.

‘15M 운동’은 ‘아호라 마드리드’ ‘사라고사 앤 코뮨’ ‘마레아 아틀란티카’ ‘바르셀로나 앤 코뮤’ 등 여러 지역에서 시민참여 정치조직을 잉태했다. 콜라우는 ‘바르셀로나 앤 코뮤’ 지지를 받아 시장이 됐다. 시민 참여 조직들이 연합해 제3세력을 형성하고 후보를 내 승리하게 된 것이다.

이들의 승리는 단순한 제3정당의 출현과는 달랐다. 집권당을 바꾸거나 한 정당 대표를 다른 사람으로 바꾸는 차원이 아니다. 시민의 힘을 정치적으로 제도화하자는 것이 목표다. 온라인 의사결정 플랫폼으로 시민들이 직접 정책을 제안했고, 온라인 투표로 정책 우선순위를 결정했다. 콜라우를 시장으로 만든 ‘바르셀로나 앤 코뮤’에선 5000명 이상이 공약 제안부터 최종안을 만들 때까지 토론과 투표에 참여했다.

콜라우의 개혁도 이 같은 과정에서 탄생한 공약을 이행한 것에 불과하다. ‘바르셀로나 앤 코뮤’는 공직수행 원칙을 ‘복종에 의한 통치’라고 정했다.



■개그맨에서 정당 지도자로



시민참여 정치를 대표하는 인물로 이탈리아엔 베페 그릴로(68)가 있다. 그릴로는 “정치적 특권 계급을 퇴출시키자”며 ‘3선금지 법제화’를 내세운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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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오성운동’ 기수 그릴로.


그릴로는 1980년대까지는 TV에서 시사풍자 쇼를 진행하는 유명 개그맨이었지만, 1987년 당시 크락시 총리를 풍자한 것을 계기로 방송출연이 금지됐다. 이후 그릴로는 매년 100회가 넘는 연극과 공연을 하며 시민들과 소통했고, 블로그에 정치 풍자·비판 글을 올리면서 유명해졌다. 2008년 영국 가디언은 그릴로의 블로그를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블로그 9위’에 선정하기도 했다. 온라인을 휩쓸었던 그릴로의 인기는 2005년 오프라인으로도 확장됐다. 그릴로를 좋아하는 사람들의 소모임인 ‘베페 그릴로 미트업’(미트업)은 1200개 지역에서 14만명이 참여하는 전국조직이 된다. 미트업은 이후 ‘깨끗한 의회’를 강조하며 부패척결운동을 했고, 2007년 9월8일 200만명이 모인 ‘V-day’ 집회로까지 이어졌다. V-day는 ‘엿 먹이는 날’이란 뜻의 이탈리아어를 줄인 말로, 이후 33만6000여명이 “부패 정치인 출마 금지를 위한 법안을 제정하자”고 서명했다.

이후 미트업을 기반으로 인터넷과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에서 다섯 가지 주제인 ‘공공수도,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 지속 가능한 개발, 인터넷 접속 권리, 생태주의’를 내세운 오성운동이 시작된다.

동시에 정당으로도 나서 오성운동은 창당 3년 만인 2012년 이탈리아 파르마에서 시장을 당선시키고, 2013년 총선에선 하원 25%, 상원 24%를 득표해 2위의 성과를 거두게 된다.

설립자 그릴로의 ‘개인기’가 오성운동의 시작이지만, 내부에선 그릴로에 대한 우려도 크다. 영화 <반지의 제왕>처럼 큰 힘을 가지게 된 사람은 세상을 망칠 수 있고, 이 때문에 개인에게 모든 힘을 줘선 안된다는 것이다.

실제 그릴로는 지난해 이민자에 대한 공격적 발언과, 온라인으로만 선거운동을 하는 원칙을 어기고 TV에 출연한 후보를 단독 제명한 것에 대해 비판을 받고 있다.



작성자: 박순봉 기자

기사 원문 보기: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oid=032&aid=0002671094&sid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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